의사명 : 홍길동 (35)
현근무처 : 삼성서울병원
전문진료과목 : 성형외과
협회가입 : 암학회

주요경력 :
1958 부산출생
1984 서울대의대 졸, 석사(91), 박사(96)
1991 충북대의대 전임강사, 조교수
1993 네델란드 유트레흐트대 연구 전임의
1997 성균관대의대 조교수, 부교수(01)


홍 교수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넘치는 의사다. 중∙고교 때에도 늘 주위에 친구가 들끓었다. 경기고 1학년 때 급우였던 친구는 홍 교수가 재수할 때 ‘관중과 포숙아’의 인연을 지키기 위해 두 살 터울인 여대생 누나를 소개시켜줬다. 홍 교수는 이때 만난 ‘연상의 여인’과 결혼했다. 누나를 소개한 친구는 현재 금융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당시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홍 교수가 고교생답지 않게 남을 배려하고 따뜻하고도 올곧은 친구여서 오래 우정을 간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의대를 마치고 ‘첫사랑’과 함께 무의촌(無醫村)이었던 충북 중원군 상모면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수안보 온천의 여관, 가게, 식당 주인들과 허물없이 테니스를 쳤고 동네아저씨, 아주머니의 말벗이 됐다. 홍 교수는 매년 초 수안보 온천에서 이비인후과 발전 세미나를 열고, 공식행사가 끝나면 그때 인연을 맺었던 마을사람들을 찾는다. 마을 사람들 역시 누가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그때 그 공중보건의’에게 도움을 구한다.

홍 교수는 농구선수가 될 뻔했다. 지금은 홍익대 부속 초등학교가 된 성암 초등학교의 농구선수였다. 코트를 누비고 링을 흔들고 싶어 체육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선친이 조용히 제안했다. 선친은 ‘유도 명문’인 대구 계성고 유도부 주장 출신으로 일제시대 국가대표까지 지낸 스포츠인 겸 기업인이었던 홍승덕 씨. 선친은 “운동선수는 힘든 길을 가야 하는데다 농구선수는 키가 커야 한다”며 고교 때 키를 보고 진로를 결정하자고 권했다. 따를 수밖에 없는 권유였다. 그러나 3년 코트를 떠나면 선수생활과는 이별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철이 들고서야 알았다. 홍 교수는 묵묵히 공부해서 재수 끝에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고 농구반, 스키반에 가입해서 원 없이 운동을 했다.

       
의사 김규언 의사 박승정 의사 김응권 의사 박진영 의사 김선회
 
친절 만족도 5점 4점 3점 2점 1점
서비스 만족도 5점 4점 3점 2점 1점
상담 만족도 5점 4점 3점 2점 1점